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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상담

[금쪽상담소] 김윤아 세월호사건 10년째 번아웃 초민감자 아버지 폭력 분노 적개심 음악

by 보통의행복 2022.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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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소문제:
10년째 번아웃. 몸이 안 아픈데가 없었음. 1. 각종 신경통증. 2. 부비동염(코 주위 얼굴 뼈속에 염증), 3. 수면장애. 15분마다 잠에서 깸. 깨면 작업하던 노래가 계속 돌아 고문. 호흡도 이상하고 갈비뼈도 아프고 위도 이상. 4. 소화장애. 계속 마르고 있음. 무력감을 느끼면서도 끊임없이 음악을 해서이지 않을까. 음악을 하는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계기가 2014년 세월호 사건 이후. 음악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함. 음악을 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냐는 자괴감에 빠짐.


내담자 이해:
왜 그렇게까지 그 사건에 큰 타격을 받은 걸까? 김윤아는 초민감자(지나친 공감 능력 때문에 같은 사건을 겪어도 감정적으로 더 많이 괴로워하는 사람). 미세한 음의 오류도 들리고, 소리 레이더망도 잘 발달했고, 이는 모든 감각이 굉장히 민감한 편. 주변 상황을 한번에 스캔하기도. 다른 사람이 필요한 것을 여기서 바로 줄 수도. 에너지 소모가 많을 수밖에. 나에게 몰두하는 에너지 + 주변에 집중하는 에너지. 모든 위기와 변수까지 고려해서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는 사람. 왜 그럴까? 위기나 어려움이 있을 때 해결할 방법을 생각하고 행해야 안전하다고 느낌. 무방비 상태에서 맞딱드리면, 그 때 생각해야 하니 불안함. 통제력을 잃지 않고 살아가고 싶음. 본인의 살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변수까지 감정적으로 개입하고 있음.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람. 저랑 동생, 엄마가 신체적 정서적 학대를 받았음. 목공소에서 매를 맞추심. 사이즈별로. 밖에서는 너무 좋은 가장이었고 피해자였고, 자신의 가족을 통제 안에 둠. 대학생 때 통금이 8시. 항상 집은 불안하고 초등학교 때는 잘 기억이 안남. 항상 뇌가 멍든 것처럼 멍했음. 가장 기억나는 건, 4월이었는데, 이 세상이 다 가짜구나 생각이 들었음. 이건 다 가짜라고 생각했던 것 같음. 초등학교 잘 기억나지 않고 친구들과도 잘 못지냈고 음악과 책으로 도피했음. 아버지 폭력은 기억조차 하기 싫은 공포였을 것. 이로 인한 영향? 될대로 돼라는 마음, 자기파괴적이고 폭력적인 자아가 있었던 것 같고, 그래서 내뱉는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나의 음악이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 그 상처 때문에 뱉어내야 하는 음악이었음. 아동학대에 관한 곡도 있음. '증오는 나의 힘'은 나의 일기장 같기도. 뱉어낼 게 있어서 뱉어낼 수밖에 없고 정화되는 느낌. 타인들 앞에서 큰 소리로 뱉으니깐. 아버지의 과도한 통제에 장악되어 있었던 김윤아가 창조적인 음악을 하는 것이 생명의 줄이었을 것. 아버지 밑에서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던 것. 그런데 이 암울한 인생에 음악을 창조하는 건 바로 김윤아 본인. 이 때 아버지 폭력에 장악된 김윤아 존재가 창조적 활동을 하면서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었던 것. 창작이 삶의 에너지 근원이고 원천이었던 것.


원래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고 보호해야 함. 나를 사랑하고 보호할 아버지가 나를 공격할 때, 이 잔인하고 폭력적인 행동들은 예측이 안 됐을 것. 어느날 어떻게 할 지 모르니깐. 어떤 날은 국이 뜨겁다고, 어떤 날은 국이 미지근하다고 혼내고. 그래서 예측된 상황, 통제된 상황을 만들고 싶었던 것.

어른이라면 약속도 지켜야하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야하고, 나는 진정한 어른이 될 거라 생각했을 것. 이렇게까지 성실한 사람이 된 것은 아버지처럼 살지 말아야하지 때문이었던 것. 혹시 그 사람처럼 될까봐의 두려움 때문에. 사회와 어른에 대한 불신과 적개심이 있었을 것. 살짝 틀면 법을 어기고 사회 부적응자가 됐겠지만, 성실하고 선량한 내면을 가진 어린 김윤아는 분노, 적개심을 창조적인 예술로 표현한 것. 큰 소리로 해야, 힘을 내야 안전해 지니 자신의 안전함을 계속 확인하는 방법이었던 것. 노래할 때 마음이 편해졌던 것. 매사에 내가 알아서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려는 면이 있었음.

그래도 학대받는 아이도 부모 사랑을 받고 싶을 때가 있음. 아버지를 가까이 하면 공격하고, 떨어지면 외로움이 있을텐데, 누군가와 가까워지는게 쉽지 않았을 것. 지금은 낯선 사람과 얘기를 잘 하지만, 2007년까진 낯선 사람과 말을 하지 못했고, 잠깐 라디오 디제이할 때 너무 힘들었음. 매일 새로운 게스트와 다정한 대화를 해야하는게 너무 힘들었음. 낯을 가린다고만 생각했음. 남편 김형규. 만화로 비유하면 윤아는 극사실주의 남편은 명랑만화채. 항상 윤아를 웃길 준비가 된 사람. 그래서 안심이 되었음. 김형규씨는 심이 없는 사람으로 보임. 동그란 그릇에 담으면 동그랗고, 네모난 그릇에 담으면 네모낳고, 그만큼 유연하고 손톱을 세우지 않으며, 가부장률 제로. 지나친 남성성이 지나치게 없음. 안심스테이크를 사주며, 안심시켜줄게 결혼하자고 했음. 결혼이란 게 계속 알아가는 건데, 파도파도 계속 안심은 됨. 윤아씨에게 형규씨는 전혀 공격적이지 않아 천생연분임.


상담과정:
비극적 사회사건 이후 번아웃에 빠졌는데, 음악이 무슨 의미가 있냐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어린 시절의 성장과정과 연결될 수 있음. 아이들이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 어른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무력감. 어린 시절의 아버지와의 관계와 아픔이 만배정도 느껴지면서 그 마음의 에너지를 다 소진해 버린 것 같음. 특히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느꼈을 때 어린 시절 아빠의 폭력과 잔인함에 무력하게 장악됐을 때 느낌이 들면서 지금의 윤아는 그 때의 윤아가 아니고, 지금의 상황은 그 일이 아님에도 그때 느끼는 마음의 고통은 비슷했을 것.

창조적인 활동이 어딘가에 있는 누군가에게 생존을 해나가는데 동아줄이 될 것. 그러면 번아웃까지 가면 안 되는 것. 아직도 번아웃과 공존하겠다는 건, 아버지로부터 받은 아픔을 다 비워내지 못했다는것. 그래서 아버지를 미워해도 괜찮음. 어릴 때 아버지와의 관계는 정말 윤아씨 탓이 아님. 윤아씨와 아버지의 관계의 문제가 아니라 아버지 자신의 문제. 아버지 미움이 담긴 그릇을 다 비우기. 그리고 그것을 다 채웠을 때 번아웃되니 수시로 비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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